[한경에세이] 예술도 運七技三(운칠기삼)

입력 2021-06-30 16:57   수정 2021-07-01 00:04

2004년 2월 말께 겨울의 끝자락에 40대 중반 나이로 가족을 놔두고 혼자 상경했다. 화랑이 주로 인사동에 모여 있으므로 지하철 3호선을 따라 형편에 맞게 자리 잡은 게 이곳 일산이다. 고향인 대구를 떠나올 때 친구들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보던 송별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. “이 나이에 뭔 상경이냐?” “사투리도 심하고 말도 어눌한데 견뎌내겠나?” “밥은 잘 챙겨 먹겠나?” 같은 말로 가족만큼이나 걱정을 해주던.

내가 상경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하나 있다.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사건이다. 처음엔 남의 일처럼 별 관심이 없었다. 하지만 연일 장안의 화제가 된 덕에 그림 값이 어마어마하게 뛰었다는 이야기는 나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. 화제가 된 이후 종전의 10배인 호당 2000만원까지 올랐다. 이슈만으로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. 당시 천 화백과 비슷한 원로들이 대구에 많이 계셨는데, 그분들의 그림 값은 보통 호당 50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였으니 말이다. 예술가가 숫자에 연연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, 숫자만큼 정직한 게 없다고 믿는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.

몇날 며칠을 고민하다 가족과 의논했고 그리고 보따리를 쌌다. 친구들이 노잣돈을 보태듯 주변 사람까지 불러서 그림을 죄다 사준 덕에 마음은 무겁지만 발걸음은 가볍게 이곳 일산에 올 수 있었다.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무인도 같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밥 해먹는 것과 그림 그리는 일밖에 없었다.

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입성한 지 불과 2년 뒤였다. 2006년 봄 모 화랑의 ‘한 집 한 그림’이라는 제목의 그룹전에 유명한 화가들 틈에 막내로 끼어 참여했는데, 오픈 첫날 내 그림을 포함한 전체 그림이 다 팔렸다는 것이다. 요즘 유행하는 말로 ‘이게 머선 129(이게 무슨 일이고)?’였다. 모든 그림에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다. 그게 시작이었는지 모르겠으나 한 2년 동안 미술시장엔 그야말로 광풍이 불었다. 유명 맛집처럼 그림도 줄을 서서 사는 진풍경을 태어나 처음 봤고 또 겪었다. 그 덕에 나는 가족을 일산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.

그때 상경을 결심하지 않았다면? 가족이 반대했더라면?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? 그 화랑의 초대가 없었다면? 심지어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사건이 없었다면? 무수한 경우의 수가 있었으나 나는 대체로 운이 좋았다. 이 정도면 ‘고스톱’뿐만 아니라 예술도 운칠기삼(運七技三)이 확실하지 싶다.

요즘 다시 미술시장이 들썩이고 있다. 10여 년 전은 마치 네덜란드의 튤립 구근 파동이 연상될 정도로 ‘반짝 광풍’이었다. 지금은 그때에 비해 비교적 차분하고 정제된 상태로 진행되는 걸로 봐서 좀 길게 이어지지 싶다. 부디 그렇게 되길 바란다. 그래서 각각의 사연을 가진 더 많은 화가가 요즘의 미술시장을 아름답게 회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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